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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교수님의 말씀....어렵다..패션...

 패션디자인학과 박주희교수의 기고문이 '패션코리아를 위한 여섯 가지 제언'이라는 주제로 신동아 8월호에 실렸습니다. 
 내용은 여섯 명의 전문가가 각각의 관점에서 바라 본 한국 패션의 내일을 제언한 것입니다. 

 자세한 기사는 아래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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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코리아를 위한 여섯 가지 제언]

 정부가 패션산업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관련 업계에 활기가 돌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6월 초, 2015년까지 390억원을 들여 패션 문화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창조적인 디자이너 패션에 예산을 집중하고, 한국 패션을 대표하는 통합형 브랜드(Umbrella Brand)를 구축해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등 산업 선진화에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발맞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패션을 테마로 한 행사를 잇달아 개최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패션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바야흐로 찾아온 한국 패션의 부흥기에 우리 패션산업이 한 단계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패션기자, 대학교수, 현직 디자이너, 해외 패션 전문가 등 패션산업 내부에서 ‘한국 패션의 발전’을 모색해온 여섯 명의 전문가가 각각의 관점에서 한국 패션의 내일을 위한 제언을 보내왔다. (편집장)


□ 현직 디자이너의 제언
 

>>> “천재 디자이너가 날아오를 공간 만들어라”

 한동안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꿈은 CD, 즉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막내 디자이너로 입사해 10년 지나 팀장 되고, 또 실장 되고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뒤에야 맡게 되는 정통 디렉터가 아니라, 젊은 나이에 천재성을 인정받아 한 브랜드의 디자인에서 커뮤니케이션까지, 브랜드 미학과 관련된 모든 일을 총괄하는, 그런 꿈의 자리 말이다.
 ‘꿈도 크다’며 웃어넘길 일은 아닌 것이, 1957년 크리스티앙 디오르 사망 후 디오르 하우스에서 혁명적인 라인을 선보인 젊은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나, 20대부터 클로에, 펜디를 디렉팅하고, ‘올드 쿠튀르’였던 샤넬에 가죽과 데님, 골프공만한 진주를 달아 젊음의 생기를 불어넣은 칼 라거펠트 등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유럽의 전통은 있되 진부하던 패션하우스들이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중심에는 항상 디자인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지 않은 악동 CD들이 있었다.


서구 패션 선진국의 ‘스타 만들기’


 대학 졸업 후 5년 만에 페리엘리스의 수석디자이너를 맡아 하이(high) 패션에 그런지(grunge)라는 하위문화를 접목시킨 마크 제이콥스는 프랑스의 고색창연한 브랜드 루이비통에서, 비슷한 경력의 톰 포드는 이탈리아의 구찌에서 마술을 부렸다. 
 ‘뉴룩’을 재해석한 디오르의 존 갈리아노, 파리의 전통을 가진 클로에에 영국 로큰롤을 가미한 스텔라 매카트니, 휴면 상태의 버버리를 깨운 크리스토퍼 베일리, 그리고 지방시를 되살려낸 알렉산더 매퀸까지 숱한 디자이너가 학교 졸업쇼에서 주목받고 20대에 한 브랜드를 책임지는 CD가 됐다.

 사실 디자인학교 졸업 패션쇼에 에디터, 바이어 등 패션계 거물들이 모이고, 그 곳에서 인재가 발굴되는 현상은 우리로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유통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다. 서구의 유통회사들은 디자이너 컬렉션을 직접 사서 판매하기 때문에 패션하우스나 바이어들로 하여금 신진 패션 천재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패션계의 큰 별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게 한다. 패션계는 프랑스의 패션하우스들이 젊고 훈련 안된 영국 디자이너들의 재능을 자본화하는 방법을 보면서 교훈을 얻었고, 이어 영국을 비롯해 프랑스, 벨기에의 디자인학교나 신진들의 컬렉션에서 인재를 발굴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스타 만들기’에는 기자, 디자이너, 기업을 비롯해 크고 작은 매장을 소유한 바이어들, 거대 백화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한다.
 예를 들면, 유명한 에디터들이 졸업 작품을 구매하거나 신진 컬렉션을 밀어주고, 삭스피프스애비뉴, 하비 니콜스 등 고급백화점과 편집매장, H·M 같은 매스마켓 브랜드도 졸업 작품이나 신진컬렉션을 전시 또는 판매해준다.
 또 디젤, 망고 같은 글로벌 패션 회사가 주최하는 대형 공모전은 신진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전세계에 홍보한다. 패션기업의 인재발굴사업은 디자인학교와의 산학프로젝트, 인턴십 제도에서 시작한다.
 산학프로젝트 결과물을 회사가 실제로 적용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수상자를 선정하고 장학금을 주면서 키운다.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1년으로 이어지는 인턴십 제도는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개인 컬렉션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한다.


“선생님이 미안하다”

 우리나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패션계 지원에 나서고 있는 최근의 현상은 무척 반갑다. 그러나 패션학도들을 육성하려면 무엇보다 패션 기업과 유통 회사가 나서야 한다. 패션 기업 차원에서 봐도 대담한 신진 발굴은 내수시장 전망이 점점 불투명해져가는 현실에서, 논리보다 마술이, 경험보다 감각이 통하고, 기능보다 이미지로 값이 매겨지는 패션산업의 특수성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10꼬르소꼬모, 데일리프로젝트 등 서구식 유통망으로 운영되는 편집매장에서 조금씩 시도되고 있는 신진 디자이너 지원 사업이 백화점 등 대형유통사로 확대돼 우리도 졸업쇼에서 스타가 탄생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학창 시절 CD가 꿈이었던 졸업생들을 학교에서 다시 보는 일이 잦아졌다. 재학 중에 큰 규모의 공모전이나 학교 행사에서 영광스러운 상을 받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굴지의 패션 대기업에 다니다 자발적 백수가 된 녀석들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국제 콘테스트 준비, 유학 준비, 개인 컬렉션 준비다. 그들의 재능과 열정을 풀어내기에 한국의 내셔널 브랜드는 너무 좁았던 것 같다. 마땅한 대안이 없기에 추천하는 취업이지만 글로벌하고, 끼가 넘치는 그들에게 ‘무조건 견디다보면 언젠가 너의 장을 펼칠 날이 올 것’이라는 진부한 상담을 해주는 것이 이젠 고역스럽다.
 독립을 선언한 제자들에게 국제 콘테스트와 해외교육기관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고, 국내 컬렉션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등의 단기적인 지원은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장기적 지원 방법이 아직까진 막연하다.


박주희 디자이너, 삼성디자인학교(SADI)패션디자인학과 교수 zenn95@hanmail.net